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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에 얽힌 몇가지 기억들.

기억의 마을. 향수의 이야기.

예전에 게임 스크립트를 하나 만들면서 이벤트 겸 넣으려고 생각했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아마 '기억의 마을'이란 부제를 달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대강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

서쪽의 평야, 고립된 한 지역에 모여 살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마을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눈을 볼 수 없는 사람이 많았다. 날씨는 언제나 쾌청했고, 사나운 짐승들도 살지 않는 곳이었으므로 살아가는데는 큰 불편은 없었다. 다만 눈이 먼 사람들이 많이 살 뿐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그 마을의 눈이 먼 한 청년이 이런 얘기를 꺼냈다 : 눈이 먼 사람들은 어떤 상대방이 자신에게 다가오면 그건 느낄 수 있지만, 사람들의 특이한 발소리를 듣거나, 목소리를 듣기 전에는 상대방이 누군지 알 수가 없어서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보통의 사회였다면 이런 이야기는 금방 무시되었겠지만, 그 마을에서는 눈이 멀었다고 해서 비정상인 취급을 받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그만큼 눈이 멀은 사람이 많았던 것이었다. 촌장은 마을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과연 눈이 먼 사람과 정상인(그들의 관점에서는 '단지 볼 수 있을 뿐인' 사람들이겠지만)들이 서로를 식별하는데에 어떤 방법을 쓸 수 있을까? 사람들은 여러가지 생각을 내놓았다. 각자를 식별할 수 있는 종을 달고 다니자는 의견도 있었고 - 작은 소리에도 쉽게 잠을 깨는 신경질적인 촌장의 성격 때문에 묵살되었다 - 각자 자신을 나타내는 문장 같은 것을 손에 매달고 다니자는 의견도 있었다 - 하지만 이 방법은 역시 눈이 보이는 사람들이 일부러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피해 지나가거나 할 수도 있었다.
길고 긴 토론이 계속되던 와중에, 한 처녀가 이런 의견을 내놓았다 : 각자가 자기 자신을 위한 향수를 가지고 다니자는 것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예민한 감각으로 향기를 구별할 수 있고, 눈이 보이는 사람들은 단지 향수를 가지고 다니는 불편만 감수하면 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의견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고 - 바람이 불어오거나 할 때 향기를 맡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처녀가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 곧 사람들은 각자의 향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각자의 향수를 만들어 간직하기 시작한 후 몇 세대를 건너뛴 다음에는 향수를 만드는 일은 그 마을 사람들의 고유한 의식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누군가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 이름을 짓는 일 보다도 먼저 그 사람만을 위한 향수를 만들어주게 되었다. 사람의 존재를 사람의 말과 언어가 아닌 감각으로 구별하게 된 것이었다.

이정도까지 쓰다가 전개 부분을 생각해야 해서.. 더 이상의 스토리를 생각하는건 그만두었었다. 뭐랄까.. '태어남과 동시에 고유한 존재로 인정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비슷하게 될 것 같기도 했고, 이벤트라면 여기에 또 뭔가 사건이 있어야 될 듯도 하고 해서..

단편 비슷하게 함 써볼까 말까하다가 내 뇌수 속에 묻혀 있는 이야기.

오후 4:07 2003-07-15


코로 숨쉬는 세상

난 코로 숨을 잘 쉬지 않는 편이다. 구강구조상의 문제인지 단순히 습관인지는 알 수 없으나, 딱히 '코로 숨을 쉬지 않기 시작한 때'가 의식에 없는 것으로 봐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된 일이 아닌가 싶다. 왜 코로 숨을 쉬지 않냐고 따져봤자... 할말은 엄따. 어쨌거나.. 그러다보니 냄새를 맡는 것도 웬간히 강렬한 냄새가 아닌 바에는 그다지 반응을 보이지 않는 편이다. (대신 뭔가 냄새가 느껴지면 코로 숨을 쉬어서 냄새를 좀 더 자세히 느끼려는 시도는 가끔 하곤 한다) 하지만 최근 고열과 편도선염에 시달린 이후, 혹시 목이 이상한게 입으로 숨을 쉬다보니 먼지같은게 곧바로 편도선으로 다닥다닥 붙는바람에 이런건가.. 싶어서 목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의식적으로 코로 숨을 쉬고 있다. 사실 회사에서야 별 불편은 없다. 회사에서 뭐 이런 저런 냄새가 나봤자.. 무슨 쓰레기 처리 하청업체도 아니고 별다른 냄새같은게 날리가 없으니까.

그것은 퇴근시간의 지하철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컨디션은 꽝. 지하철에 실려 기절한 상태. 간신히 자리는 확보해서 가방을 부둥켜안고 겔겔거리고 있었는데, 옆자리에 대략 강렬한 향취의 40대 후반쯤인 아저씨가 착석하신게다.

아아.. 난 그때까지 내 코가 40대 후반 남성의 땀냄새와 구운 마늘냄새와 숯으로 구워진 삼겹살의 냄새와 고추냄새와 소주냄새와 기타 야채의 냄새를 구분해서 느낄 수 있는 기관이라는 것을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게다가 냄새때문에 살인충동을 느껴보는것도 처음이었다. 머리속에서는 그 아저씨의 머리통을 내려치는 상상이 계속되고.. 난 식은땀을 흘리며 가방을 꼭 안고 냄새를 필사적으로 참고 -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 그렇게 전철에 실려 집으로 돌아갔다.

라는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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