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난 "남자가.." 혹은 "여자가.."하는 말들은, 그 의도가 명백히 농담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닌 이상, 싫어하는 편이다. 인간의 개성이라는 것은 천편일률적인 어떤 기준을 세워 재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남성성이나 여성성이라고 부르는 것들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여성스러운 남자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이지 당위성이라든가 도덕률이라든가 윤리라든가 하는 단어를 들이대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도 어떻게 보면 여성성에 해당하는 특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러한 어떤 가치관이나 관념을 형성하기까지는, 난 스스로를 뭔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었던게 사실이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장래희망이 뭐냐고 묻는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주부라고 답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나고, 그외의 여러가지 면에서도 내가 나 스스로를 볼때는 남성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으니까. 요컨대, "나는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인건가?" 정도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내 눈에 보이는 여러 남자들은 이런 저런 개성은 있다고 해도, 일반적인 통념에서의 "남자"에 해당하는 어떤 테두리 안에 묶여있는 사람들 뿐이었고, (반면에 여자들의 경우에는 좀 더 다양했었던걸로 기억한다) 그러다보니 그렇게 "남성성 = 남자"라는 의식이 머릿 속에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을 뿐이었다. (물론 여기에서 "남성성"이라는 단어는 흔히 상식적이라는 이름으로 "남자는 이래야 돼"같은 종류의 남성성을 말한다) 보통 청소년기에는 다들 그렇지만 - 별 것 아닌 생각을 크게 키우는 능력은 내게도 당연히 존재했던 것이어서, "정신적인 불안함"은 어느새 "내가 뭔가 잘못된 사람이 아닐까"의 인식을 넘어서 "나는 비정상이야"의 선을 넘나들었고, 20대가 접어들었을 때에는 그런 인식이 좀 더 확고해져서 "난 정상인처럼 행동하는 비정상인일 뿐이다"의 결론을 당연하게 여기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난 그런 것을 굳이 누구에게 말해본 적도 없고 - 사실 그렇게 절실하다거나 궁금한 고민이나 문제가 아니었기에 - 답을 구해보려는 노력도 없이 나름의 일상을 유지하며 사는데에 골몰하고 있었다.

이 고민 아닌 고민이 내 머리 속에서 다시 고개를 든 것은, 아마 PiFan?에서 헤드윅을 보고 난 이후였을게다. 내게 있어 호모섹슈얼이라든가 게이라든가 레즈비언이라든가 하는 단어는 머리 속에서 성적 환타지로나 존재할 뿐이지,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이란건 냉장고의 냉매가 내 뇌에 미칠 수 있는 영향 정도로 미미한 것이었고 - 그렇다고 내일 갑자기 냉장고의 냉매가 인간의 뇌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에 대한 뉴스가 나오더라도 이 표현에 흥분하지는 않아주었으면 좋겠다 - 그런 상태에서 접한 이 영화는 내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한 사람들.

우리에게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가치관과 세계관이란 것은 얼마나 얄팍한가. 때가 되면 일어나야하고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고 때가 되면 학교에 가야 하고 때가 되면 취직해야 하고 때가 되면 결혼해야 하고 때가 되면 아이를 낳아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안되는건가? 아니 그 이전에, 이것들은 "선택"이 아닌가?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학교라는게 인류의 사회에 생겨난지는 얼마나 되고, 회사라는 형태의 법인이 생겨난 것은 또 얼마나 되는가. 하지만 사람들의 삶은 교육/경제 활동이라는 이름 하에 얼마나 그 시스템에 잘 묶여져 있는가. 그리고 그 시스템의 기준(혹은 가치관)에서 벗어난 사람은 얼마나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매도당하고, 무시당해야 하는지 말이다.

구 동독으로부터 꿈의 나라인 U.S.A에 가기 위해, 결혼을 위해 거세당한 동성애자이며, 그 연인에게조차도 버림받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인 음악을 통해서도 또 다른 연인에게 버림받으며, 음악조차도 잃어 정체성을 잃은 존재. 남자이되 남성을 잃었으며, 뮤지션이되 음악을 도둑맞고, 오직 세상에 대해서 완벽한 misfit이 된 헤드윅.

그가 "You're doing all right!"이라고 노래할 때, 내 안의 규격외부품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굳이 남성성을 요구하지 않아도 괜찮은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게 되었다.

* PiFan? :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매년 여름에 개최되며 마이너 성향의 재미있는 영화들이 많이 상영되기 때문에, Kenial은 시간이 있는 한 보러 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