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nial Daily Notes200905 UserP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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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이호선 전철이 신림역 플랫폼으로, 지상에서 지하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순간이면, 갖가지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는다. 전철 창 밖, 흐린 겨울날의 회색 그라데이션이 멀어져가는 순간, 기술이 사람의 삶을 바꿔놓기 시작하면서 넓은 공간 대신 좁디좁은 강철과 콘크리트의 구조물 사이로 사람들이 숨어들기 시작한, 그 시간의 경계를 지나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 밖은 이제 드문드문 형광등이 희미한 불을 밝히고 있다. 터널 안, 막힌 공간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듯 전철 어딘가의 부품들이 덜거덕거리거나 마찰음을 낸다. 공간 속에서 그 소리들은 어디론가 퍼져나가지도 못하고 터널 속을 맴돈다.
...
오렌지색 가로등이 채 어둠을 벗겨내지 못한 겨울 아침 일곱시십분, 이호선 전철이 미끄러지듯 대림역 플랫폼으로 들어선다. 사람들은 지치고 경직된 얼굴로 어딘가를 향하고 또 향한다. 심각한 표정으로 책을 읽는 남자도, 혹은 잠든 여자도,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의 목적지와 욕망을 가지고 이 이호선 전철에 올랐을 것이다. 하늘은 청색에서 옅은 호박색으로, 이내 물빠진 오렌지색으로 물든다. 거리에는 어둠 대신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하고, 겨울 햇살을 받은 은색 자동차의 프레임이 희미하게 빛나며 지나쳐간다. 전철은 이윽고 지하로 들어선다. 신림역. 두더쥐같다. 지하로 파고들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각기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림자진 건물로 걸어들어가 형광등을 켜고 오늘의 하루를 시작하겠지. 두더쥐같다. 태양의 그림자를 불빛으로 밝혀가며 살아가는 삶.
...
모든 사고가 해체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혼란에 빠졌다.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아니, 단어 하나, 이미지 하나를 머리 속에 떠올리는 일조차도 그러했다. 나는 내 머리 속의 사고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한 단계씩 집중하며 읽어보려 했다. 하지만 부질 없는 짓이었다. 미끈거리는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으려는 것처럼, 내 신경의 끄트머리는 매번 모호한 이미지의 링크 어디에선가 길을 잃고서야 깜짝 놀라며 빈손을 멍청히 바라볼 따름이었다.
...
생경한 감정.
다들 이렇게 변해가고 있구나.
...
순간을 견디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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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이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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